외계의 신비 [X-FILES TERMINAL v3.14]

1975 트래비스 월튼 납치 사건: 7명의 증인이 50년간 유지한 진술

1975 트래비스 월튼 납치 사건: 7명의 증인이 50년간 유지한 진술

광고 · 쿠팡 파트너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1. 일곱 명의 벌목공과 그날 저녁

1975년 11월 5일 저녁 6시경, 애리조나 시트그리브스 국유림에서 일곱 명의 벌목공이 하루 작업을 마치고 픽업트럭에 올라타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마이크 로저스가 산림청과 체결한 벌목 계약을 수행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트럭의 운전석 옆에서 마이크 로저스가 비명을 질렀다. 100미터 앞 숲속에 거대한 원반형 비행체가 정지 비행 중이었다. 벌목공 한 명, 트래비스 월튼이 흥분해 트럭에서 뛰어내려 비행체에 다가갔다. 그 순간 강한 푸른빛이 그의 몸을 휘감았고, 그는 그대로 의식을 잃은 채 공중으로 떠올랐다 사라졌다.

scene-2

2. 공포에 질린 6명의 도주와 복귀

트래비스가 푸른빛에 휩싸여 의식을 잃자 운전석의 마이크 로저스는 즉시 트럭의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트럭은 비포장 산길을 시속 80킬로미터로 도주했고, 나머지 5명은 트럭 뒤편에서 공포에 떨었다. 약 5킬로미터를 도주한 후 마이크는 트럭을 멈췄다. 누군가 한 명이 “우리는 트래비스를 두고 왔다”고 말했고, 일행은 다시 사건 현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푸른빛도, 비행체도, 트래비스도 모두 사라진 후였다. 그들은 가장 가까운 마을 헤버로 차를 몰아 보안관에게 신고했다.

scene-3

3. 보안관의 살인 의심

신고를 접수한 나바호 카운티 보안관 마틴 글리슨은 처음에는 6명의 증언을 의심했다. 그는 트래비스의 동료들이 트래비스를 살해한 후 외계인 납치를 위장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했다. 1975년 당시 외계인 납치 사건이라는 개념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안관의 의심은 합리적이었다. 7명이 함께 일하다 1명이 사라졌는데 5명이 “비행접시가 그를 데려갔다”고 진술한다면, 누구나 의심할 만했다.

4. 거짓말 탐지기 6명 모두 통과

보안관은 즉시 6명 모두에게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실시했다. 1975년 11월 10일 시행된 첫 번째 검사에서 6명 중 5명이 “통과”로 판정되었고, 한 명은 “판단 불가” 결과가 나왔다. 모든 검사관이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6명 모두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거짓말 탐지기 검사는 100퍼센트의 신뢰성을 가진 도구는 아니다. 그러나 6명이 모두 통과한 사실은 적어도 6명 중 누구도 의도적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강한 증거였다.

scene-4

5. 5일간의 대규모 수색

사건 발생 다음 날부터 애리조나 주 경찰과 국립공원 관리국이 합동으로 대규모 수색 작전을 시작했다. 헬리콥터 4대, 수색견 12마리, 자원봉사자 약 200명이 시트그리브스 국유림 약 50제곱킬로미터를 5일간 샅샅이 수색했다. 그러나 트래비스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발자국 한 점, 옷가지 한 조각, 핏자국 하나 발견되지 않았다. 11월 10일 저녁, 보안관은 수색을 중단하고 트래비스를 공식 실종자로 분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로 그날 밤이었다.

6. 도로변에서 발견된 트래비스

1975년 11월 10일 밤 12시 5분, 트래비스의 누나 그랜트 닐의 집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 너머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헤버 마을 외곽 주유소입니다. 트래비스가 좀 도와달라고 합니다.” 그랜트와 마이크 로저스는 즉시 주유소로 달려갔다. 트래비스는 공중전화 부스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5일 전 사라질 때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그의 몸에는 어떤 외상도 없었다. 다만 그는 극심한 갈증을 호소했고, 자신이 사라진 시간이 단 몇 시간이라고 믿고 있었다.

scene-5

7. 트래비스의 흰 빛의 방 기억

트래비스 월튼은 의식을 회복한 후 자신이 겪은 일을 자세히 진술했다. 그는 푸른빛에 휩싸인 후 흰 빛으로 가득 찬 둥근 방에서 깨어났다고 했다. 방에는 키 약 1미터 30센티미터의 작은 존재 세 명이 있었고, 그들은 큰 머리와 검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트래비스는 공포에 질려 가까운 통로를 통해 도망쳤고, 다른 방에서는 인간과 비슷한 외형의 두 남자와 한 여자를 만났다고 했다. 그들은 트래비스에게 마스크를 씌웠고, 그 후로 다시 의식을 잃었다. 다음으로 그가 의식을 회복한 곳은 헤버의 주유소 옆이었다.

scene-6

8. 트래비스 본인의 거짓말 탐지기

1975년 11월 15일, 트래비스 월튼 본인도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받았다. 검사관 시릴 트레이는 검사 후 다음과 같은 결론을 보고했다. “트래비스가 진실을 말하고 있을 가능성은 98퍼센트입니다.” 다음 해 1976년에는 다른 검사관 존 맥카시가 두 번째 검사를 실시했는데, 이번에는 “거짓 판정”이 나왔다. 그러나 후에 맥카시의 검사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트래비스에게 검사 결과를 미리 알려주는 등 표준 절차를 위반했던 것이다. 1993년 세 번째 독립 검사에서는 다시 “진실” 판정이 나왔다.

scene-7

9. 회의론: 벌목 계약 조작설

사건의 진실에 대한 회의론도 여전히 존재한다. 일부 연구자들은 마이크 로저스가 벌목 계약 위반을 모면하기 위해 사건을 조작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11월 5일은 로저스가 미 산림청과 체결한 벌목 작업의 계약 마감일이었고, 작업이 지연된 상태였다. 외계인 납치 사건이 발생하면 “불가항력적 사유”로 마감일이 연장된다. 그러나 이 가설에도 약점이 있다. 7명 모두 거짓말 탐지기를 통과한 사실, 트래비스가 5일간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어딘가에 있어야 했다는 사실, 그리고 50년간 단 한 명도 진술을 바꾸지 않았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scene-8

10. 50년이 지난 지금의 일관된 증언

사건이 발생한 지 50년이 지난 현재까지 트래비스 월튼과 동료 6명 중 생존한 4명은 모두 같은 증언을 유지하고 있다. 1993년에는 사건을 다룬 영화 “파이어 인 더 스카이”가 제작되었고, 트래비스는 영화 제작에 자문으로 참여했다. 그는 영화 수익의 일부를 받았지만 사건을 영리적으로 이용하지는 않았다. 2010년대 이후 그는 여러 다큐멘터리와 인터뷰에 출연했고, 매번 같은 진술을 유지했다. 그를 비판하는 회의론자들조차 트래비스의 진술이 50년간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scene-9

11. 50년 합의의 비현실성

심리학자 키스 바스터필드는 2012년 한 논문에서 사건의 핵심을 지적했다. “7명이 같은 거짓말을 50년간 한 번도 흔들지 않고 유지하는 것은 사실 자체보다 더 비현실적입니다.” 실제로 1970년대 이후 진행된 다양한 거짓말 합의 실험에서, 4인 이상의 그룹이 10년 이상 거짓 진술을 일관되게 유지한 사례는 거의 없었다. 트래비스 사건은 7명이 50년을 유지했다. 사건이 거짓이라면 적어도 한 명은 어딘가에서 진술을 흔들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12. 마치며: 5일의 공백이 남긴 의문

1975년 11월 5일 트래비스 월튼이 사라졌던 5일 동안 그는 어디에 있었을까. 동료 6명이 본 푸른빛의 비행체는 무엇이었을까. 5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사건에 대해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단 하나다. 7명의 증인이 50년간 단 한 번도 진술을 바꾸지 않았다.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7명의 인생을 50년간 일관되게 유지하기 위한 합의는 그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사건의 진실은 트래비스 월튼 본인만이 알고 있다. 그리고 그가 50년간 같은 진술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사건 최대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광고 · AliExpress

AliExpress 추천 상품

이 링크를 통해 구매 시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 영상으로 보기

https://youtube.com/watch?v=9B0AQQssu8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