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텍사스 공대 캠퍼스의 그날 밤
1951년 8월 25일 밤 9시 20분, 미국 텍사스 럽벅 시의 텍사스 공과대학 캠퍼스 정원에서 세 명의 교수가 일상적인 저녁 모임을 가지고 있었다. 갑자기 그들의 머리 위로 V자 대형을 이룬 18개의 흰빛이 소리도 없이 빠르게 통과했다. 빛들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약 4초 만에 시야를 가로질러 사라졌다. 그 후 한 달 동안 같은 V자 대형이 럽벅 상공에 12차례 반복해서 나타났고, 한 17세 소년이 그것을 사진으로 포착했다.

2. 박사 학위를 가진 세 명의 과학자
1951년 8월 25일 밤 럽벅에 있던 세 교수는 모두 텍사스 공대의 정식 교수진이었다. 지질학과 교수 윌리엄 로빈슨, 화학공학과 교수 알 오버펠트, 그리고 석유공학과 교수 윌리엄 듀카쿠바였다. 세 사람은 모두 박사 학위를 가진 객관적 관찰력을 갖춘 과학자였다. 그들의 첫 목격 후 다음 몇 주 동안 그들은 추가로 11차례 같은 V자 대형을 관찰했고, 매번 빛의 개수와 형태, 비행 방향과 속도를 자세히 기록했다. 모든 관찰에서 빛의 수는 18개로 일정했고, V자 대형의 각도도 동일했다.

3. 학장에게 제출된 첫 공식 보고서
1951년 9월 1일, 윌리엄 로빈슨 교수는 텍사스 공대 학장에게 첫 공식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에는 V자 대형의 형태, 18개의 빛, 일정한 간격과 속도, 완전한 무음이라는 특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로빈슨 교수는 보고서의 결론에서 다음과 같이 단정적으로 말했다. “이것은 별이나 새 떼나 항공기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우리 세 사람의 과학자로서의 명예를 걸고 본 것을 그대로 보고합니다.” 학장은 보고서를 즉시 미 공군 럽벅 공군기지에 전달했다.
4. 17세 카를 하트의 5장 사진
교수들의 보고가 텍사스 지방 신문 럽벅 어밸런치 저널에 게재된 1951년 8월 31일 밤, 17세 고등학생 카를 하트 주니어는 자신의 침실 창문에서 V자 대형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즉시 자신의 코닥 카메라로 5장의 사진을 촬영했다. 5장 모두 18개의 빛이 V자 대형으로 정확히 보였다. 카를은 다음 날 아침 신문사에 사진을 가지고 갔고, 신문은 9월 4일 1면에 사진 5장을 모두 게재했다. 같은 주 미 공군이 사진의 진위를 조사하기 위해 럽벅을 방문했다. 5장의 원본 사진은 즉시 공군에 제출되어 워싱턴으로 보내졌다.

5. 프로젝트 블루북의 6개월 조사
카를 하트의 사진 5장은 미 공군의 UFO 조사 부서인 프로젝트 블루북에 인계되었다. 약 6개월간의 조사 끝에 1952년 3월 공군이 발표한 결론은 단 한 줄이었다. “사진의 진위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이는 공군이 약 1만 2천 건의 UFO 신고를 조사한 결과 중에서 “판단 불가”로 분류한 극히 드문 사례 중 하나였다. 대부분의 신고는 “풍선”, “비행기”, “별”, “착각” 중 하나로 분류되었지만 럽벅 사진은 어디에도 분류되지 못했다.

6. 새 떼 가설과 그 두 가지 약점
사건 직후부터 일부 회의론자들은 럽벅 라이트가 단순히 도시의 가로등 빛을 반사한 새 떼였다는 가설을 제기했다. 1951년 럽벅에는 새로 설치된 수은등 가로등이 있었고, 그 빛이 야간 비행하는 새들의 배면에 반사되어 V자 모양의 빛으로 보였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이 가설에는 두 가지 약점이 있었다. 첫째, 빛의 배열이 정확히 V자였고 같은 형태가 12차례 반복되었다. 새 떼는 그렇게 정확한 V자를 12차례 같은 각도로 유지하기 어렵다. 둘째, 빛이 새의 배면 반사라면 그 새들의 종이 무엇인지 조사하면 알 수 있었지만, 어떤 조류학자도 그 설명에 맞는 야간 비행 종을 제시하지 못했다.

7. 카를 하트의 70년 일관된 진술
카를 하트 주니어는 17세에 사진을 촬영한 후 평생 약 70년간 사진의 진위에 대해 같은 진술을 유지했다. 그는 2008년 사망 전까지 단 한 번도 자백, 정정, 또는 “실은 조작이었다”는 진술을 하지 않았다. 1990년대 그의 만년에 진행된 한 인터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1951년에 본 것은 18개의 빛이었습니다. 새 떼였는지 비행기였는지 외계 비행체였는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사진은 정확히 제가 본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70년 일관된 진술은 사진의 신뢰성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한 증거 중 하나로 평가된다.

8. 교수들의 침묵과 그 이유
텍사스 공대 세 교수 중 윌리엄 로빈슨은 1956년 한 학술지에 사건에 대한 마지막 공식 글을 기고한 후 사건에 대해 침묵했다. 그는 1972년 사망 전까지 어떤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았다. 그의 동료 알 오버펠트는 1975년 한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침묵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세 사람의 보고는 1951년 당시 학계에서 큰 비웃음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과학자 경력에 큰 타격이었습니다. 저는 두 번 다시 그 사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진술은 교수들이 사건을 조작했다면 일관된 침묵을 유지할 동기가 없었음을 보여준다.

9. 70년 미해결 사건의 다층적 증거
1951년 럽벅 라이트는 70년이 지난 지금도 미 공군이 “판단 불가”로 분류한 채로 남아 있는 유일한 UFO 사진 사건이다. 사건의 증거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박사 학위를 가진 세 명의 과학자가 12차례 같은 형태를 관찰했고, 17세 소년이 5장의 사진을 촬영했으며, 미 공군이 6개월간 조사했지만 진위를 판단하지 못했고, 사진 촬영자가 70년간 같은 진술을 유지했다. 이 모든 증거가 한 사실을 가리키고 있지만 그 사실의 정체는 아직 누구도 모른다.

10. 사진의 원본은 어디에 있는가
사건의 또 다른 미스터리는 카를 하트의 원본 사진 5장의 행방이다. 1951년 9월 미 공군에 인계된 원본은 워싱턴 D.C.의 프로젝트 블루북 본부로 보내졌다. 1969년 프로젝트 블루북이 공식 종료되면서 모든 자료가 국립공기우주박물관 산하 아카이브로 이관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럽벅 사진의 원본 5장의 행방은 추적되지 않는다. 2005년 한 정보공개 청구에서 공군은 “해당 사진의 원본 소재를 확인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사건의 가장 중요한 물증이 정부 아카이브에서 사라진 것이다.
11. 마치며: V자 18개의 정체
1951년 8월부터 9월까지 한 달간 텍사스 럽벅 상공에 12차례 나타난 V자 대형 18개의 빛의 정체는 70년이 지난 지금도 밝혀지지 않았다. 세 명의 과학자, 한 명의 17세 소년, 미 공군의 6개월 조사. 모든 증거가 사건의 실재를 가리키지만 정체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1951년의 그 빛이 새 떼였다면 왜 12차례 같은 V자를 유지했을까. 비행기였다면 왜 무음이었을까. 외계 비행체였다면 왜 한 도시 상공에만 한 달간 나타났을까. 사건의 답은 미 공군이 “판단 불가”라고 적은 그 한 줄짜리 결론과 함께 70년이 지나도 봉인된 채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