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의 신비 [X-FILES TERMINAL v3.14]

1989-1990 벨기에 UFO 웨이브: F-16도 잡지 못한 검은 삼각형

1989-1990 벨기에 UFO 웨이브: F-16도 잡지 못한 검은 삼각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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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마을의 두 경찰관이 시작한 사건

1989년 11월 29일 저녁, 벨기에 동부 에프란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두 경찰관이 정기 순찰 중이었다. 오후 5시 24분, 그들의 머리 위로 거대한 검은 삼각형이 소리도 없이 지나갔다. 한 변의 길이가 약 30미터, 꼭짓점마다 강렬한 흰빛이 발광하는 비행체였다. 그날 밤 같은 지역에서만 30건의 목격 신고가 접수되었다. 그것이 13개월간 이어진 벨기에 UFO 웨이브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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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만 3500명의 목격 신고

1989년 11월 29일을 시작으로 1990년 4월까지 약 5개월 동안 벨기에 전역에서 거대한 검은 삼각형에 대한 목격 신고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벨기에 헌병대와 경찰이 공식 접수한 신고만 1만 3500건이 넘었다. 신고자의 직업은 다양했다. 경찰관 26명, 군인 17명, 헌병대원 13명, 기상학자 4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모든 신고가 같은 특징을 묘사했다. 거대한 검은 삼각형, 세 꼭짓점의 흰 불빛, 중앙의 붉은 불빛, 그리고 완전한 무음 비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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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벨기에 공군 참모총장의 결단

1989년 12월부터 벨기에 공군은 자국 영공에서 미확인 비행체의 활동이 단순한 풍문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공군 참모총장 빌프리드 데 브라우어 장군은 이례적인 결정을 내렸다. 헌병대의 신고가 접수되면 즉시 F-16 전투기를 출격시켜 추적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단순한 풍문이라면 군이 움직일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헌병대와 경찰이 같은 것을 보았다면 군이 확인할 의무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세계 어떤 공군도 이렇게 솔직하게 UFO 추적을 공식 정책으로 채택한 사례는 없었다.

4. 1990년 3월 30일의 추적 작전

1990년 3월 30일 자정, 벨기에 헌병대로부터 새로운 신고가 접수되었다. 두 명의 경찰관이 거대한 검은 삼각형이 자신들 머리 위 100미터에서 정지 비행 중이라고 보고했다. 동시에 글론 군 레이더기지와 세미카프 레이더기지가 같은 위치에서 미확인 표적을 포착했다. 약 30분 후 벨기에 공군은 보후 공군기지에서 F-16 두 대를 긴급 출격시켰다. 두 F-16 조종사는 자신들의 기체 레이더에서 미확인 표적을 포착했고, 약 1시간 동안 9차례 록온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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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초 만의 40G 가속도

F-16 두 대의 레이더에 포착된 표적의 움직임은 당시 알려진 어떤 항공기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표적은 처음에는 시속 280킬로미터의 일정한 속도로 비행하다가, 록온 신호를 감지한 순간 단 1초 만에 시속 1800킬로미터로 가속했다. 동시에 고도를 9000피트에서 5000피트로 갑자기 하강했다. 이런 가속도는 약 40중력가속도에 해당하며, 인간 조종사가 탑승한 어떤 항공기로도 불가능한 기동이었다. 통상의 전투기 조종사는 9중력가속도에서 의식을 잃는다. F-16 조종사는 단 한 차례 시각으로 표적을 확인하려 했지만 그 순간 표적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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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벨기에 공군의 공식 보고서

1990년 7월, 벨기에 공군은 3월 30일의 추적 사건을 다룬 공식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의 결론은 충격적이었다. 첫째, 두 지상 레이더와 두 F-16 레이더가 모두 같은 표적을 동시에 포착했으므로 단순 오작동이 아니다. 둘째, 표적의 기동 특성은 1990년 당시 알려진 어떤 항공기로도 설명할 수 없다. 셋째, 표적의 정체에 대해 공군은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다. 세계 어떤 공군도 이렇게 솔직한 보고서를 발표한 적이 없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의 어떤 공군 공식 발표도 이렇게 명확하게 “설명 불가”라고 인정한 사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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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데 브라우어 장군의 평생 증언

공군 참모총장 빌프리드 데 브라우어 장군은 2008년 은퇴 후에도 사건에 대해 침묵하지 않은 드문 군 지도자였다. 그는 2010년 한 다큐멘터리 인터뷰에서 분명히 진술했다. 1989년부터 1990년까지 벨기에 상공에 있었던 그것은 풍선도 비행기도 헬리콥터도 아니었다. 그것은 1990년 당시 인류 기술로 만들 수 없는 무엇이었다. 그는 자신의 진술이 비웃음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군 지도자의 책임은 본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2024년 사망 직전까지 같은 진술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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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페트리트 사진과 2011년 자백

1990년 4월 4일, 벨기에 페트리트라는 마을에서 한 17세 소년이 자신의 카메라로 한 장의 사진을 촬영했다. 사진에는 거대한 검은 삼각형과 그 세 꼭짓점에서 빛나는 강한 불빛이 선명하게 포착되어 있었다. 이 사진은 2011년까지 21년간 벨기에 UFO 웨이브의 가장 유명한 증거 사진이었다. 그러나 2011년 당시 17세였던 패트릭 마레라는 남자가 한 방송에서 자신이 만든 폴리스틸렌 모형이라고 자백했다. 그러나 자백에도 의문이 남았다. 패트릭의 모형은 사진 속 비행체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았고, 그는 어떤 모형도 직접 보여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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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가짜 사진이 가리지 못한 진실

패트릭의 자백 이후에도 벨기에 UFO 웨이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사진 한 장이 가짜라 하더라도, 13개월간 1만 3500명의 목격자가 같은 형태의 비행체를 같은 방식으로 묘사한 사실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F-16 두 대가 9차례 록온을 시도했지만 표적이 1초 만에 40중력가속도로 사라진 사실도 사라지지 않는다. 두 지상 레이더 기지의 데이터도 사라지지 않는다. 공군 참모총장이 평생 같은 증언을 유지한 사실도 사라지지 않는다. 가짜 사진 한 장은 사건의 진실을 가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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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미군 비밀 항공기설의 한계

사건 직후부터 일부 연구자들은 그 검은 삼각형이 미군의 비밀 항공기였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1989년 당시 미군은 F-117 스텔스 전투기를 운용하고 있었고, B-2 스텔스 폭격기를 막 시험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군의 어떤 항공기도 시속 1800킬로미터로 1초 만에 가속하거나 40중력가속도의 기동을 할 수는 없었다. F-117은 아음속이고 B-2는 시속 970킬로미터가 최대였다. 게다가 미군이 외국 영공에서 자국 비밀 항공기를 시험할 이유도, 그것을 외국 공군에 추적당하면서 시험할 이유도 없었다.

11. 마치며: 30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은 의문

1989년 11월부터 1990년 4월까지 벨기에 상공에 있었던 그 거대한 검은 삼각형의 정체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밝혀지지 않았다. 1만 3500명의 시민, 4개의 레이더 기지, F-16 두 대의 콕핏 레이더, 그리고 공군 참모총장의 평생 증언이 같은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무엇이 그날 벨기에 상공에 있었을까. 인류는 아직 답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한 국가의 공군이 자국 영공의 미확인 비행체에 대해 “우리는 설명할 수 없다”고 공식 인정한 유일한 사례라는 점이다. 그 이례적 솔직함이 이 사건을 다른 UFO 사건과 구별 짓는 가장 큰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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